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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18 1만가지 영혼의 피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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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너스톤커뮤니티교회 작성일18-10-17 15:25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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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어느 성도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데 어떻게 이 세상에 (그리고 나의 삶에) 가슴아픈 일들이 생기도록 놓아두실까요?” 이것은 답하기가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많은 불신자들에게 믿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악과 고통의 문제 관하여는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성경의 많은 저자들 조차도 영혼의 고통의 문제를 안고 씨름만을 했음을 봅니다. 19세기 영국의 대설교가 C.H. Spurgeon 목사님은 시편 88편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육체보다 훨씬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무저갱으로까지 떨어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육체의 고통은 어느 정도 상처를 받으면 한계가 있고 그것으로 끝이지만, 사람의 영혼은 1만가지 방법으로 피를 흘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은 하루에도 수십번이고 죽음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육체적인 핍박은 거의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우리들은 여러가지 형태의 죄와 싸우느라 영혼에 큰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죄로 매일 뼈저린 고통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죄의 가시가 나의 심장을 깊이 찌를 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영혼의 피흘림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실로 1만가지 방법으로 영혼의 피흘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 질문을 하지요: “주님, 어느 때까지 입니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성도님들 가운데서 현재 영혼의 큰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영혼이 피흘리는 고통을 경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시 88편을 설명하면서 이 시에서 비치는 유일한 위로의 빛줄기가 있는데, 그것은 그 시의 첫줄 제목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가 지금 영혼의 고통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만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영혼의 고통을 허락하시는 깊은 이유가 우리가 그분만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일지도 (tough love)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낙심이 되고 고통이 있더라도 십자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혼의 수렁에서라도 속히 구원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